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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자동차 세계여행] #3, 드디어 유라시아 횡단 시작

BigOh 2023. 7. 13. 08:59

#6. 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카우치 서핑 특별 대사 로만의 깜짝 선물

 

오후에 삼베리 마트에 가서 여행에 필요한 음식과 물품을 사고

 

우리를 초청한 로만네 집으로 이동했다.

 

행정 구역상 블라디보스토크지만 조금 외곽에 있는 주택가였다.

 

구글 지도로 근처까지는 찾아갔지만, 우리나라와 아파트 구조가 달라

근처에서 헤매다 간신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였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아주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고,

 

하필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엘리베이터가 수 리 중이어서 9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집에는 남편 로만 씨만 혼자 있었고, 조금 지나니 두 딸과 아내 타니야가 왔다.

 

부부와 두 딸이 사는 평범한 러 시아 서민의 가정이었다.

 

현관에서 인사하고 로만 씨가 우리에게 잘 방을 안내했는데

 

나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느라 혼이 났다.

 

우리가 하루 동안 잘 방은 문이 없고 그냥 허름한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방과 주방, 그리고 화장실이 한국의 시골에서도 살림이 넉넉지 못한 집처럼 아주 허름했다.

 

나는 순간 아들이 불편할까 너무 미안했다.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애써 밝게 감사 인사를 하고 방에서 잠깐 쉬 려는데

 

로만 씨가 자기 PC에서 무언가를 보여 줬다.

 

지금까지 자기 집에서 카우치 서핑을 한 전 세계의 손님들을

 

국적에 따라 세계 지도에 표시해 놓고 정리한 자료 였다.

 

로만 씨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0명이 넘는 손님이 이 집에서 묵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인도 20명 넘게 왔었다고 했다.

 

사실 조금 불안한 감정이 있었는데 안심이 됐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카우치서핑 홍보대사 로만네 집

 

조금 뒤 나는 방에서 아들과 첫째 딸 마야가 닌텐도 게임을 함께 하게 했다.

 

“아빠 뭐라고 해?”

 

“게임 같이 하자는 말이 영어로 Let’s play a game이야.

영어는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냥 game이라고 하면 알 아들을 거야.”

 

“아빠가 말해 줘.”

 

“아니, 태풍이가 말해 봐. 못 알아들으면 그냥 손짓, 발짓으로 하면 돼.”

 

“Game? Game?”

 

“OK.”

 

아들은 태어나서 처음 외국 어린이와 함께 놀았다.

 

그리고 잠시 뒤, 로만 씨가 직접 차린 현지 가정식을 온 가족이 함께 먹었다.

 

메뉴는 쌀밥과 파스타 종류였는데 간을 거의 하지 않고 싱겁게 먹는 게 새로웠고,

 

또 덩치가 큰 러시아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게 먹는 것도 신기했다.

 

‘이렇게 적게 먹는데 러시아인들은 왜 이렇게 키가 클까?’

 

저녁을 먹고 방에서 아들과 잠시 쉬며 아들한테 얘기했다.

 

“태풍아, 오늘이 생일인데 오늘은 호텔에서 잘 걸 그랬나? 안 불편해?

 

화장실도 그렇고 밥도 조금밖에 못 먹었 잖아.”

 

화장실도 처음 만난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써야 하고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아

 

아들에게 물었더니 천진난만한 아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아냐, 난 아빠랑만 있으면 아무 데나 괜찮아.”

 

순간 나도 모르게 유명한 만화 노래 생각이 났다.

 

‘어른들은 몰라요. 어른들은 몰라요.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그렇다. 아이들은 고급 호텔과 비싼 음식보다도 아빠, 엄마와 함께 있는 게 최고인,

 

항상 사랑에 배고파하는 존 재란 걸 다시 깨달았다.

 

로만네 집에 오기 전, 로만 씨가 원한 손님의 의무 사항이 딱 하나 있었다.

 

“혹시 일행 중 생일이나 기념일이 있 다면 꼭 미리 얘기해야 한다.”라는 것.

 

그래서 혹시나 말을 안 하면 안 되는 상황인 거 같아

오늘이 아들 생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미리 말한 상태였는 데,

 

저녁을 다 먹고 조금 지나자 로만 씨가 직접 구운 빵에 촛불을 켜 깜짝 생일 파티를 해 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보다도 내가 더 감동했다.

 

 

 

방문도 없는 낡고 허름한 집에 충격과 실망과 불안을 느꼈던 내가 너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로만네 가족은 그렇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사는

 

행복한 가족이었다.

 

 

“로만, 볼쇼이 스파시바(대단히 고맙습니다)!”

 

 

로만 가족과 함께(로만, 부인 타니아, 두 딸 마야, 에밀리아)

 

#7. 러시아-크라스키노(Kraskino), 쓸쓸한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삼은 첫 번째 목표는 아들과의 추억,

 

두 번째 목표는 역사 유적 방문을 통한 아들의 현장 교육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지역은 과거 연해주라 불리며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많은 독립투사의 흔적 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여행을 출발할 때 가장 먼저 방문을 계획한 곳이 바로 ‘크라스키노’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30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고,

 

안중근 의사가 손가락을 자르며 동지들과 함 께 맹세한 것을 기념하는

 

‘단지동맹비’가 있는 뜻깊은 곳이어서 아들과 함께 가려고 계획했었다.

 

로만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근처에 있는 꽃집으로 가서 국화를 샀다.

 

크라스키노로 가는 길은 시베리아 횡단 도로와는 반대 방향인 북한 쪽으로 가는 길이라 그런지

 

비포장 구간이 많고 거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1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거리라 그런지

 

중국어 간판과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고 국경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냥 가끔 있는 포트 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지진이 났던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바닥이 깨지고 무너진 구 간이 아주 길게 이어졌다.

 

크라스키노 근처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단지동맹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중국과 북한 국경의 작은 러시아 마을 크라스키노에 있는 단지동맹비

 

“태풍아, 여기가 안중근 의사랑 관련된 단지동맹비라는 기념물이 있는 데야.

 

안중근 의사가 누군지 알아?”

 

“응, 일본이랑 싸운 좋은 사람. 그런데 여기를 왜 왔어?”

 

“옛날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괴롭힐 때, 안중근 의사가 일본이랑 싸우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랑 다짐하면서 손가 락을 잘랐는데 그걸 단지동맹이라고 하거든?

 

여기가 그걸 국민에게 알려 주려고 단지동맹비라는 비석을 세워서 만든 공원이거든.

 

여기서부터 우리 여행을 시작하고 싶어서 태풍이랑 같이 왔어.”

 

“손가락을 왜 잘랐어?”

 

“응, ‘우리나라를 일본으로부터 되찾아 독립할 수 있게 우리 다 같이 뭉치자.’

 

이런 마음으로 손가락을 잘라서 ‘대한독립’이라고 글자를 썼었대.”

 

“진짜? 아팠겠다. 그런데 왜 여기 아무도 없는데 이런 게 있어?”

 

“그러게 직접 와 보니까 너무 사람이 없고 쓸쓸하다.

우리 아까 사 온 꽃 헌화하고 같이 묵념하자. 안중근 의사 님한테 인사드려야지.”

 

“응, 나도 할래.”

 

이곳 크라스키노로 오는 길은 지금 자동차로 운전해도 멀고 험한데 그 옛날엔 어땠을까?

 

허허벌판에 도로라고는 구멍이 뻥뻥 뚫린 편도 1차로에 시속 60km 이상 달릴 수가 없고

 

주변엔 온통 중국 말만 들리는 러시아-북한중국 3개국의 국경 근처 외딴곳 크라스키노.

 

조금이나마 과거 안중근 의사의 외로움을 아들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비에서 헌화하는 아들

 

#8. 러시아-우수리스크(Ussuriysk), 아빠의 대참사는 곧 아들의 포복절도

 

어제는 우수리스크 호텔을 찾다 전통 사우나 시설인 ‘반야(Banya)’가 있는 숙소가 있어 예약했었다.

 

그래서 오늘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바로 그 반야를 체험하러 갔다.

 

러시아 반야 이용 방법은 우리나라 목욕탕과는 조금 달랐다.

 

반야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목욕 가운과 수건, 슬리퍼를 받아서 탈의실로 들어가면,

 

옷을 벗고 가운을 입고 성별 사우나 시설로 들어간다.

 

그리고 물에 들어가거나 샤워할 때만 벽에 가운을 걸고 이용한다.

 

즉, 우리나라처 럼 옷을 다 벗고 사우나에 가는 게 아니라 가운을 입고 가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 날은 평일 낮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이용 방법도 모르던 우리는 누굴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일단 옷을 벗기 전 탈의실과 사우나 시설을 둘러보고 동선을 파악했다.

 

탈의실에서 오른쪽 통로로 나가면 지하 사우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반대편인 왼쪽 통로로 나가면 호텔 레스토랑에 나가서 식 사나 음료를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물어볼 사람도 없어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데 아들은 신이 나서 빨리 가자고

 

벌써 옷을 다 벗고 한쪽 벽에 기대 보채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옷을 벗고 일단 가운 두 벌을 손에 들고는 아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며 다그쳤 다.

 

“태풍아, 좀 조용히 해 봐. 아빠, 정신없어.”

 

그리고 나는 아들이 서 있던 벽을 따라 통로로 나갔다.

 

 

“아!”

 

 

나는 이 외마디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우나로 가는 오른쪽 통로로 가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

 

가운을 손에 들고 벌거벗은 채 호텔 레스토랑으로 활짝 (?) 나아가 버렸다.

 

한 1~2초 정도 되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나는 그 순간 너무 많은 직원과 레스토랑 손님의 눈알을 마주쳐 버렸 다.

 

‘망했다!’

 

“태풍아, 너 왜 여기에 서 있었어? 아빠 정신이 없어서

 

네가 서 있는 쪽이 목욕탕인 줄 알고 그냥 나갔잖아.

 

여 기 식당이야. 아빠, 여기 직원이랑 손님들 벌거벗고 다 봤어. 어떡해?”

 

“까르르르르~~~~”

 

“웃지 말고 아빠 좀 정신없게 하지 마. 제발~”

 

“아이고, 배야~~~”

 

아들은 바닥을 데굴데굴 뒹굴며 배에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재밌다고 웃었다.

 

우수리스크에 고려인이 많다던데 이 호텔에는 한국인이 잘 안 오는지

 

프런트와 사우나 입장을 할 때 직원과 대 화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그 덕분에 아마도 이 호텔 전 직원이 여기에 한국인 부자가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우수리스크의 러시아인들에게 위풍당당(?) 한국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 아빠는 창피하지만 넌 이제 죽을 때까지 ‘우수리스크’ 하면

 

‘아빠가 벌거벗고 식당으로 나간 도시’로 즐겁 게 기억할 수 있겠네. 그럼 됐지, 우리 아들~

 

 

[태풍이 일기]

나는 오늘 아빠랑 호텔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러시아에서는 사우나를 반야라고 한다고 했다.

아빠는 옷을 다 벗 고 호텔 식당으로 들어갔다.

너무 재밌었다. 호텔에 한국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서 직원들이 아빠랑 나를 다 안다 고 했다.

너무 재밌어서 한참 웃었는데 아빠한테 혼이 났다.

그만 웃으라고 했는데 계속 웃어서 혼났다.

 

그래도 재밌는 날이었다.

 
 
호텔 식당으로 나가는 통로(좌측), 사우나로 입장하는 통로(우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