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러시아-하바롭스크(Khabarovsk), 어지러움 증상의 시작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 숙소까지의 거리는 678km,
내가 태어나 지금껏 하루 동안 운전한 거리로는 가장 긴 구간을 오늘 가야 한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눈앞이 핑 돌기 시작해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눈을 마사지했다.
그러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나랑 게임 할래?”
“아니, 태풍아. 오늘 아빠 운전 많이 해야 해서 빨리 가야 해.
숙소 가서 놀자. 지금 아빠 어지러워서 잠깐 세운 거야.”
한 5분 정도 앉아서 스트레칭도 하고 마사지를 좀 했더니 괜찮아졌다.
다시 운전을 시작해 가고 있는데 30분도 되지 않아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많이 타던 놀이 기구 중에 ‘뺑뺑이’라고
그냥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기구가 있었다.
마치 그 기구를 한 50바퀴쯤 돌고 나서 서 있을 때 같은 그런 어지러운 증상이었다.
‘아! 어떡하지?’ 급히 차를 갓길에 세우고 다시 눈을 감았다.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하루만에 670km 주행
“아빠, 차 왜 세웠어? 나랑 게임 하자.”
“….”
‘이런 공감 능력 없는 아들 같은 녀석아!’
아빠는 지금 위험한 상황인데 계속 게임 타령을 하는 걸 보고는
‘이래서 다들 아들보다 딸이 좋다고 하나?’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태풍아, 아빠 지금 너무 어지러워서 잠깐 쉬는 거야.”
한 번만 더 증상이 나타나면 그냥 차를 돌려 가장
가까운 숙소에 가서 쉬자고 생각하고 10분쯤 눈을 감고 있었 다.
다행히 그 뒤로는 증상이 없었고, 서둘러 하바롭스크까지 남은 거리를 운전해
숙소에 안전히 도착했다.
‘내 몸아, 딱 1년 만이라도 버텨다오!’ 모든 신께 빌며 잠이 들었다.
#10. 러시아-비로비잔(Birobidzhan), 시베리아로 가는 길
하바롭스크에서도 아침에 잠깐 어지러운 증상이 있긴 했지만,
침대에 잠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니 증상이 없어져
아들과 아무르강 근처 놀이공원에 가서 2인용 자전거도 타고 재밌게 놀았다.
하바롭스크 놀이공원에서 아들과 2인용 자전거 타기
당분간 운전을 무리하지 않기로 해 숙소를 2시간 30분 거리의 비로비잔으로 정했는데
금방 주유소가 있을 줄 알 았지만, 하바롭스크에서 110km를 주행하는 동안
주유소는커녕 사람 사는 마을도 안 보였다.
그래서 출발하고 과자를 사 달라는 아들한테 “응, 주유소 나오면 사 줄게.” 하고
110km를 내리 달려왔다.
비로비잔이란 도시는 아직 지리상 시베리아로 분류되지는 않는 지역이었다.
‘그럼, 시베리아는 도대체 어떻길래?’
나는 이미 시베리아의 존재에 압도되어 버렸다.
비로비잔 숙소에 도착해 하루 푹 쉬고 다음 날은 480km 거리인 벨로고르스크까지 가기로 했다.
비로비잔에서 300km 주행 후 180km 정도 남겨 놓고 트럭 휴게소에서 아들과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빠 트럭이 왜 이렇게 커?”
“응, 러시아는 땅이 엄청 크니까 서쪽에서 동쪽으로 짐을 옮길 때 이런 큰 트럭을 많이 이용하거든.
근데 한 번 에 많이 옮겨야 하니까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거야”
러시아는 정말 거대한 땅덩어리만큼이나 트럭도 아주 컸다.
시베리아로 들어갈수록 일반 승용차는 많지 않은데 이런 트럭은 자주 볼 수 있었다.
가히 시베리아 횡단 도로는 트럭을 위한 도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 하바롭스크까지는 시간대가 한국보다 1시간 느렸었는데
이제부터는 1시간 빨라져 한국과 시간이 같아졌다.
이제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걸 보고는 일찍 도착해
그간 비포장도로 주행으로 더러워진 차를 세차하기로 했다.
그런데 구글 지도 정보와는 다르게 어렵게 찾아간 세차장은 가는 곳마다 쉬는 날이거나
영업 종료 시간이 지나 있었다.
결국, 세차는 하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호텔로 찾아갔으나,
호텔도 세 곳이 모두 만실이었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난감하다. 이제 해도 지고 여긴 큰 도시가 아니라 호텔이 많지 않은데…’
저녁 8시가 다 돼 간신히 한 곳에 체크인을 하고 서둘러 아들과 씻고 저녁을 먹었다.
러시아 도착 첫날 짐을 찾을 때만큼 힘들었던 하루였다.
평소 같으면 숙소와 웬만한 식당, 세차장 등 대부분의 정보는 구글 지도에서 확인 후
바로 예약할 수 있는 편리 한 세상이다.
하지만, 2022년 지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국제 제재를 받고 있어, 카드 결제와 현금 인출도 안 되고,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인터넷을 통한 정보 활용은 제약이 많다.
게다가 이곳은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국가이고 심지어 문자도 알파벳이 아닌
한국인에게는 낯선 키릴문자를 쓰는 나라이다.
우리 부자는 러시아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여행하기 최악의 시기에 러시아를 횡단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인터넷도 쓸 줄 모르는 아프리카 원주민 부자가 강원도 산골 마을을 여행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 덕에 나는 가는 곳마다 몸이 고생하며 단순한 일 처리도 시간을 배로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자는 70~80년대처럼 아날로그 삶을 체험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다.
[태풍이 일기]
오늘은 아빠랑 트럭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캠핑하는 기분이 나서 좋았다. 옆에는 엄청 큰 트럭들이 많 이 있었다.
아빠가 러시아는 땅이 커서 물건을 나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짐을 옮기려고 트럭이 큰 거라고 했다.
러시아는 정말 큰 나라인가 보다.
오늘은 도착해서 세차장이랑 호텔을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러시아 트럭도 보고 재밌었다.
#12. 러시아-벨로고르스크(Belogorsk), 시베리아에서 걸린 이석증
이번 여행 중 항상 새벽 4시부터는 유튜브 영상 편집,
7시부터는 아침 준비, 9시부터는 운전과 촬영, 18시 무렵 숙소 도착 후엔 저녁 준비,
20시엔 아들과 게임 그리고 22시 취침이 일상인 나는 여느 때처럼 새벽에 눈을 떴다.
그런데 ‘앗!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몸을 일으켜 균형을 잡아 보려는데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지러워서인지 구토까지 나오려 했다.
‘큰일이다.’ 다시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다시 억지로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아들이 나를 깨웠다.
“아빠, 배고파.”
“어, 그래. 아빠가 새벽에 일어났었는데 너무 어지러워서 다시 잤어. 그런데 지금도 너무 어지럽네…”
어지러운 몸을 간신히 균형 잡고 일어나 비상식량을 챙겨 아들에게 먹이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잠깐씩이긴 했지만 하루에 몇 번씩 어지러운 증상이 있어
어제 숙소에 체크인을 할 때 직원 에게 ‘근처에 병원은 있는지’
혹시 ‘구급차를 부르면 몇 분 만에 오는지’ 등을 물어봐 놓았던 차였다.
큰 병원은 1시간 이상 가야 하고 의원은 숙소 바로 길 건너에 있다는 점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9시에 길 건너 의원에 갈 생각이었다.
어린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다 보니 큰 일정뿐만 아니라
작은 동선과 여행지 정보까지 혼자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신경 쓸 게 많아서였을까?
평생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몇 번 안 되는 튼튼한 몸이었는데
이 먼 타국에서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니.
9시가 되고 아들에게 기대며 길 건너 의원으로 갔다.
전문 분야는 산부인과인 거 같았다.
이석증 치료받은 산부인과 의원이 있는 건물
기다리다 진료를 받았지만, 산부인과가 전문인 의사는 나를 뇌졸중 증상으로 보는지
계속 혈액 순환과 다른 신 경계 증상을 테스트했다.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분명 뇌졸중 관련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다 테스트하더니 정상인 거 같다고 더 자세히 보고 싶으면
내일 다시 와서 혈액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나는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곳은 한국에서 누군가가 나를 도우러 온다 해도 3~4일은 족히 걸리는 거리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 항공편도 폐쇄되었고,
배편은 매주 금요일 1회밖에 운항하지 않는다.
또 어렵게 블 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다 해도
이곳까진 육로로 1,500km 정도 떨어진 거리.
‘큰일이다. 이 도시는 물론 이 근처에도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이러다 혹시 정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 순간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차를 함께 싣고 온 백진수 형님이 생각났다.
형수님이 러시아 사람인데 우수리스크 근처가 처가여서
당분간 그쪽에 계실 거라고 하셨던 게 생각이나
지푸라 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님에게 전화했다.
“형님, 안녕하세요?”
“아! 잘 있지? 영상(유튜브) 잘 보고 있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제가 지금 벨로고르스크인데 이석증에 걸린 거 같아요.
너무 어지러워서 구 토도 하고 몸을 전혀 못 움직이겠어요.
근데 혹시 무슨 일 생길까 봐 연락드릴 데가 없어서 연락드렸어요, 형님.”
“아, 그래? 걱정하지 마! 아들한테도 내 전화번호 알려 주고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해.
아내랑 같이 교대로 운전하면 금방 가니까. 전화해!”
말뿐일지라도 정말 마음의 짐을 절반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백진수 형님의 부친은 과거 기상청 고위직을 지내신 분으로
형님의 아버님과 나는 직장 대선배님과 후배 사이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미국에서 지내신 형님의 미국명이
허리케인 이름 ‘앤드류’라고 해서 아들 태풍이와 절묘하게
인연이 닿아 있었던 터라 신기해했었는데,
이렇게 힘들 때 의지할 수 있어서 아주 감사했다.
‘형님,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비상시 대책을 세워 놓고 이제 치료 방법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몇 년 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월동연구원 생활을 했었는데,
그 당시 28차 동기 대원 중 ‘이주섭’이란 의사가 있었다.
아주 똑똑한 동생으로 지금은 미국에서 의사로 있는 동생에게 SNS로 연락했다.
그 동생은 내 증상에 대해 모두 듣더니 직접 보고 진료한 게 아니라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말한 증상만 놓고 보 면 이석증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는 ‘애플리 매뉴버’라는 치료법을 알려 줬다.
나는 아들에게 점심으로 컵라면과 햄버거를 챙겨 주고는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치료법을 따라 했다.
“태풍아, 오늘은 아빠가 너무 아파서 태풍이랑 못 놀 거 같은데 심심해도 씩씩하게 참아 줘.”
“아빠, 많이 아파?”
“응, 아빠가 어디 아파서 토하는 거 본 적 없지?
근데 아까 병원 앞에서 토했잖아. 아빠 진짜 너무 어지러워서 몸을 못 움직이겠어.”
“알았어, 나 유튜브 보고 놀고 있을게. 아빠는 쉬어.”
그렇게 온종일 자고 잠깐 일어나면 치료법을 따라 하다
저녁은 즉석 밥과 간장, 통조림 참치를 비벼서 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가방에 있던 간식과 물을 모두 꺼내 놓고
아들에게 챙겨 먹으라고 알려 주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눈을 떠 보니 어제보단 훨씬 좋아졌다.
일어나서 걸으면 조금 어지러운 감이 남아 있지만,
구토가 나오거나 할 정도로 어지럽진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순간 잠들어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했다.
아들은 심심해서 종일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잠이 들었는지
손에 휴대전화를 꼭 쥐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고 화면을 보니 포털 사이트 창이 열려 있었다.
‘어? 게임이나 유튜브가 아니고 왜 포털 창이 열려 있지?’
검색창을 보니 검색 이력이 남아 있었다.
‘이석증 나는 법’
‘이석증 다 나는 법’
‘어지러울 때 나는 법’
아들 휴대전화 검색창엔 틀린 맞춤법으로
아빠 이석증 낫는 법을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아들을 한참 동안 부둥켜안고 울었다.
너무너무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리고 기특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이런 아들의 간절한 마음 덕분이었을까?
하루 만에 완쾌는 아니지만, 몸 상태를 80% 가까이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하루만 더 쉬기로 했다.
이제 몸은 움직일 수 있어 우리는 온종일 호텔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하며 놀았다.
[태풍이 일기]
어제는 아빠가 아팠다. 아침에 호텔 앞에 있는 병원에 갔다.
아빠는 여기 러시아 병원에서는 치료가 힘들 거 같다고 했다.
아빠랑 손잡고 마트에 가서 음식을 샀다.
아빠는 가면서 몇 번 토를 했다.
내가 아빠 손을 잡아서 도 와줬다.
점심도 혼자 먹고 아빠는 잠을 잤다.
저녁도 혼자 먹고 아빠는 아무것도 안 먹고 다시 잤다.
너무 심심 했다.
아빠가 빨리 나아서 나랑 같이 게임을 하고 놀면 좋겠다.
심심하다.